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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기사 [M+제작일지] ‘맨 오브 라만차’ 서숙진 무대디자이너, 무대 위 지하감옥을 만들다

기사입력 2015.09.08 14:38:18 | 최종수정 2015.09.08 15:11:13


우리가 만나는 무대 위 수많은 작품들은 그냥 탄생하지 않습니다. 몇 달에 거쳐 합을 맞춘 배우들과, 그들을 더욱 빛나게 해줄 의상과 조명, 완벽하게 세팅된 무대 미술과 이를 총괄하는 연출가, 그리고 극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줄 아름다운 음악까지. 하나의 작품을 탄생시키기 위해 남들이 신경 쓰지 않는 무대 뒤, 움직이는 사람들의 ‘백조의 발버둥’을 살짝 엿보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MBN스타 금빛나 기자]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을 보러 온 관객들은 극장에 발을 딛는 순간 9m 높이의 스페인의 거대한 지하 감옥과 마주하게 된다.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지하 감옥은 무대 위 죄수들 뿐 아니라 관객들마저 가둘 작정인지, 그 거대한 돌 벽은 무대를 넘어 객석의 중앙 벽까지 침투해 나간다.

‘맨 오브 라만차’의 지하감옥은 투박한 듯 웅장하면서도, 섬세한 감성으로 관객들에게 다가간다. 지하 감옥의 유일한 통로가 열리면서 거대한 계단이 내려오는 무대 기술에 입을 벌리던 관객들은 극이 진행될수록 극의 흐름과 어우러지면서 실제 자신이 지하 감옥에 온 듯 죄수들이 펼치는 연극의 매력에 깊게 빠져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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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오디컴퍼니


극중극 형태로 진행되는 ‘맨 오브 라만차’는 미구엘 드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를 원작으로 만든 작품이다. 1965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한 이후 한국에는 2005년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돈키호테’라는 타이틀로 처음 공개됐다. 2007년 공연장을 LG아트센터로 장소를 옮기면서 지금의 ‘맨 오브 라만차’가 된 이 작품은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관객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원작의 작가이자, 극작가 겸 시인 세르반테스가 신성모독죄로 감옥에 끌려오면서부터 극은 시작된다. 이른바 감옥의 신입생인 세르반테스는 다른 죄수들에 의해 또 다른 재판을 받게 되고, 그는 죄수들에게 무죄를 인정받기 위해 급하게 즉흥극을 시작한다. 이전까지 어둡고 무거운 지하감옥에 불과했던 무대는 세르반테스가 이야기를 시작하는 순간 돈키호테가 살고 있는 라만차의 공간으로 순식간에 분위기가 바뀐다.

2005년 국립극장 ‘돈키호테’부터 2015년 디큐브아트센터의 ‘맨오브라만차’까지. 10년이라는 시간동안 각각의 공연장에 맞게 무대를 꾸며왔던 서숙진 무대 디자이너를 만나 그간의 이야기들을 들어보았다.

◇ 더 좁게 더 답답하게 더 어둡게…‘맨 오브 라만차’ 지하 감옥이 되다

지금의 관객들이 보는 ‘맨 오브 라만차’의 무대는 9년 전 LG아트센터에서 완성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돌 감옥의 외벽이 객석을 침범하게 된 것은 2012년 샤롯데씨어터에서 공연되면서 부터였다.

“샤롯데씨어터에서 공연할 때였다. 동글 느낌을 주기 위해서 객석의 벽까지 돌로 싸게 됐는데 생각보다도 더 괜찮은 것이다. 이후 2013년 충무아트홀에서 공연을 할 때는 객석의 반을 돌로 감쌌다. 올해 ‘맨 오브 라만차’의 무대를 올리기 위해 디큐브아트센터에서 작업을 하는데, 어떤 극장 스텝이 그러더라. 이번에는 객석 전체를 쌀거냐고.(웃음) 사실 돌로 객석 벽을 쌓는 것이 쉽지 않은데, 당장은 아니지만 한 번쯤은 도전해 볼만한 부분인 것 같다.”

‘맨 오브 라만차’의 무대 디자인은 서 디자이너가 연출가 데이비드 스완과 만난 순간 탄생했다. 당시 데이비드 연출은 ‘깊게 파인 우물 같은 공간’을 요구했고, 이에 영감을 받은 서 무대디자이너는 동굴 감옥, 혹은 돌 감옥의 이미지를 떠올린 것이다. 덕분에 메탈적인 요소로 인해 현대의 느낌이 강한 브로드웨이 원작과는 달리 국내의 ‘맨 오브 라만차’는 중세 유럽의 감옥과 같은 분위기를 살릴 수 있었다.

“처음 디자인을 시작했을 때 어떻게 하면 극장을 답답하고 좁은 감옥처럼 만들까, 그리고 어떻게 그 곳에서 그들의 삶에 대한 꿈을 가깝게 느낄 수 있게 해줄 수 있을까를 가장 많이 고민했다. 10년 전 감옥의 느낌을 주기 위해 많이 막아놨더니 조명이 막힌다며 처음 조명감독에게 한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래도 원했던 방향으로 디자인이 이뤄졌고, 다행히도 많은 이들이 서울에서 두 번째로 넓다는 그 국립극장을 좁게 느껴주셔서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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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오디컴퍼니


‘감옥’에 초점을 맞춘 나머지 답답할 정도로 어두웠던 ‘맨 오브 라만차’의 공연장은 재공연이 거듭되면서 점차 밝아져 나갔다. 물론 다른 작품 공연장에 비하면 여전히 어두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과거에는 너무 어두워서 보이지 않았던 감옥 벽돌의 디테일이, 이제는 유심히 살펴보면 확인할 수 있을 정도까지 그 명암이 밝아졌다.

“초연 때였다. 극장이 너무 어둡다보니 열심히 만들어 놓은 돌 조각이 하나도 안 보인 것이다. 방염 스티로폼을 사용해 지하 감옥의 돌을 만들었는데, 그게 얼마나 단단한지…보통 열선으로 조각을 하는데 열선이 안 들어갈 정도였다. 심지어 화감암을 조각을 하는 분이 ‘못하겠다’고 손을 들 정도로 힘들게 조각했다. 하다가 화상도 입기도 했는데, 정작 공연이 시작해서 보니 그 고생이 하나도 안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내가 이럴 것 같으면 조각을 했겠느냐’했는데, 이제는 너무 밝아져서 디테일이 너무 잘 보인다. 밝아져서 답답함은 사라졌는데 그 느낌은 희석이 된 것 같아서 개인적으로는 아쉽다. 그래도 지금은 어두움과 밝음 그 중간점을 잘 찾은 것 같기는 하다.”

서 디자이너가 ‘맨 오브 라만차’ 무대에서 가장 전해주고자 했던 것은 바로 ‘세상과의 단절’이었다. 빛과 자유가 펼쳐진 세계는 지하 감옥의 문에 의해 막히고, 그 다음에는 끝이 없을 것 같은 어두움이 깔린다.

“개인적으로 처음 오프닝 장면에서 위에서 계단이 내려오는 장면을 좋아한다. 극중 계단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은 매우 크다. 뜨거운, 개념적인 공간으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매개체인 것이다. 국립극장 초연당시 이 계단의 그림자가 계단 벽에 붙어서 극적인 느낌을 연출했었는데, 다음 공연장에서는 장소 상의 문제로 시도하지 못했다. 이도 언젠가는 다시 선보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계단 오프닝 신을 제일 좋아한다고 고백한 서 디자이너는 가장 힘들고 어려운 신으로 알 돈자의 집단강간 신을 꼽았다. 심적으로, 그리고 무대 디자인적인 측면에서도 쉽지 않은 장면이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눈을 어디다 줘야하는지 곤란했고, 소품 적으로도 배우들을 위해 합판을 샌딩한다고 했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나무라는 소재의 한계로 인해 그 신만 하고 나면 여배우들이 그렇게 많이 까지고 다치더라. 개인적으로 알돈자를 연기하는 배우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다.”

◇ 함께 함을 알려준 ‘맨 오브 라만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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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오디컴퍼니


‘엘리자벳’ ‘햄릿’ ‘라카지’ ‘프랑켄슈타인’ 등 대극장의 화려한 디테일을 함께하는 디자이너라는 평을 듣는 서 디자이너는 자신이 작업을 했던 수많은 작품 속에서도 ‘맨 오브 라만차’를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왜 뮤지컬이 종합예술이라고 하는지 알게 해 준 작품이 바로 이 ‘맨 오브 라만차’다. 연출과 대본, 그리고 배우, 모두가 딱 일체가 되는 느낌이었다. 스태프들과의 호흡이 좋았고, 많이 싸우기는 했지만 조명 감독과의 합도 좋았다.(웃음) 디자인을 함에 있어서 비주얼적인 것이나 역사적인 고증보다도, 더 먼저 생각하는 부분은 ‘작품을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느냐’이다. 이에 따라서 사물과 무대가 변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작업을 할 때 대본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대본을 보고 감이 오면 진행 속도가 정말 빠르다. 데이비드 연출과의 만남부터 큰 영감을 받았던 ‘맨 오브 라만차’는 작업을 하는 내내 즐거웠고 잡업 속도도 빨랐다. ‘맨 오브 라만차’는 대본을 볼 때부터 좋았고, 음악을 들으면 들을수록 행복했다. 개인적으로 제가 작업한 작품 중 가장 사랑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서 디자이너는 좋은 작품, 완성도 높은 무대를 만들기 위해 스태프들과 치열하게 싸우고 논의하고, 소통하는 것이 즐겁다고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공연을 올리기 급급해 대화와 공유가 줄어들고 호흡하는 것이 옛날보다 줄어드는 요즘 날의 작업 분위기에 씁쓸해하던 서 디자이너는 “작품 준비 기간이 길어졌으면 좋겠다”고 아쉬워했다.

“무대는 관객이 상상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상상과 배우의 연기를 통해 그 곳에 있을 만한 공간을 만들고 소품을 만드는 것이 공연의 묘미인데, 요즘 들어 많은 작품들이 관객에게 상상의 여지를 남겨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관객들 역시 이 같은 여지를 가지고 싶지 하지 않는 것 같다.”

서 디자이너는 멋진 무대를 만드는 것은 쉽지만 좋은 무대를 만드는 것은 쉽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무대 디자인을 아름답게 만들 수는 있지만, 배우가 못 살고, 장기 말로 활용을 못하면 아름다운 그림일 뿐이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이 일을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디자인을 해서 가져갔는데, 그때 그 연출이 보면서 ‘그림은 정말 멋있다. 하지만 어떻게 놀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 적이 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무대라는 것은 연출이 배우와 함께 놀 수 있는 집이다. 작품의 정서와 연출이 잘 움직일 수 있겠금 하는 것이 좋은 무대다.”

“저는 아직까지 빈 무대가 좋아요. 그래서 작품을 시작하기 전 늘 빈공간의 공기를 마시고, 작업에 들어가요. 작품을 놓고 치열하게 싸우는 것이 좋고 스태프들과 논쟁을 벌이는 것도, 작품에 대해 떠드는 것도, 교류하는 것도 좋아요. 이 작업은 절대 혼자서 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혼자가 아닌 함께 하는 작업이라서, 이 직업이 즐겁습니다.”

금빛나 기자 shinebitna917@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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