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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인터뷰] 류혜린 “유부녀 역할 맡아 기뻤다…이제 제 나이 찾는 중”
기사입력 2015.02.27 10:05:04 | 최종수정 2015.02.27 17:21:19
배우 류혜린은 그동안 주로 코믹한 역할을 맡아왔다. 영화 ‘써니’의 욕배틀 장면 속 소녀부터 tvN ‘일리 있는 사랑’에서 자신의 카페 직원에게 “너 물똥 쌌니?”라고 천연덕스럽게 묻는 유부녀 역할까지, 하나같이 능청스러움이 넘쳐흐르는 캐릭터로 대중들을 만났다.
‘써니’ ‘족구왕’ 등 영화는 몇 차례 출연했지만, TV 드라마로는 ‘일리 있는 사랑’이 겨우 세 번째다. 그런데다 tvN ‘SNL코리아’ 시즌4 크루로 활동한 탓에 류혜린을 개그우먼으로 알고 있는 시청자도 있다. 드라마 속 그의 코믹한 캐릭터를 보면 그 ‘오해’가 이해되기도 한다.
이에 대해 류혜린은 “제 말투와 호흡이 차분해서 더욱 그렇게 느끼시는 것 같은데 사실 내면은 어마어마하게 뛰어다니고 있다”고 웃었다. 하지만 “낯을 좀 가리는 편”이라는 그는 스스로도 “화면 안과 실제의 내가 극과 극이긴 하다”고 인정하며 영화 ‘써니’의 캐스팅 일화를 전했다.
“오디션을 보러 가도 감독님이나 작가님들이 ‘정말 다르다’고 말씀 하신다. 연기처럼 밝을 줄 알았는데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하니 말이다. 영화 ‘써니’ 때도 그랬다. 감독님께서 제가 출연한 발랄한 연극을 보고 저를 만나셨다. 제 나름대로는 오디션이고 하니 예쁜 원피스 차려 입고 갔는데, 감독님께서 두 번째 만나셨을 때까지도 계속 갸우뚱거리시더라. 제게 ‘애드리브는 좀 하냐’고 물으셨는데, 제가 거기다 대고 ‘저는 연극은 약속이라고 생각한다’고 정말 진지하게 대답했다. 다행히 감독님께서 연극 속의 제 모습을 잘 보셔서.(웃음) 연극 속 발랄한 모습도 저니까 그 부분을 봐주셨던 것 같다.”
그런 류혜린은 ‘일리 있는 사랑’이 끝난 후 연극을 주로 보러 다닌다고 했다. 그의 필모그래피는 연극으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연극으로 연기를 시작했고 지금도 가끔 낭독 공연에 참여한다고 말하며 류혜린은 연극에 대한 애착을 드러냈다. 그는 연극을 보는 것을 가리켜 ‘환기’라고 표현했다.
“2012년부터 방송을 시작했고, 그 전에는 계속 연극을 했다. 연극을 보면 관객들의 반응이 곧바로 온다는 점에서 빠르게 변하는 연기 스타일이나 동향을 잘 알 수 있게 된다. 연극 동료들이나 선배님들께 부지런히 연락 돌려서 연극 보러 가고 있다. 가끔 낭독 공연 같은 것은 참여하는데 이를 두고 동료들이 ‘발은 안 빼고 있구나’라고 웃는다. 확실히 연극을 보러 가면 좋은 기운을 받고 온다. 배우에게도 ‘환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코믹한 역할을 맡으면 일상생활에서도 밝으려고 노력하는데 그런 기운을 한 꺼풀 벗겨내고 저를 차분하게 만드는 거다.”
그는 ‘일리 있는 사랑’에서 극중 주인공 김일리(이시영 분)의 절친 정수영으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드라마 관련 기사에서 많은 댓글들이 ‘정수영이 정말 웃기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시청자의 반응을 알고 있냐고 물으니 류혜린은 수줍게 웃으며 “이런 거 얘기 해도 되나. 솔직히 댓글을 다 본다”고 고백했다.
사진=옥영화 기자
“그런 반응에 대해서는 감사할 뿐이다. 가끔 저도 댓글을 달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앞으로의 진행을 예측하는 누리꾼들에 ‘사실 이런 거야’라고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할 때도 있지만 꾹 참았다.(웃음) 제 자신이 의심도 많아서 사람들이 어떻게 저를 받아들이고 있는지 궁금하다. 사실 연극을 오래해서 바로 피드백이 오는 분위기가 익숙하다. 상처? 잘 안 받는다. 솔직히 말하면 아직까지 사람들이 심한 욕을 할 만큼의 인지도는 아니고.(웃음) 댓글을 본다고 제가 당장 고칠 만한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서 별로 달라질 것은 없을 것 같다.”
류혜린은 ‘일리 있는 사랑’에서 아이가 있는 유부녀 역할을 맡았다. 드라마에서 툭하면 “내가 아이만 빨리 안 낳았어도”라는 말을 하지만, 자식 자랑을 입에 달고 사는 전형적인 엄마를 연기했다. 아직 솔로로서 유부녀 역할이 부담스럽지 않았냐는 질문에 그는 손사래를 쳤다. “오히려 유부녀 역할이 너무나 좋았다”고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이번에 유부녀 역할을 했다. 정말 좋았다. 저는 체구가 작아서 어린 이미지가 있기 때문에 어린 역할을 주로 했다. 작년에도 공연에서든, 독립영화에서든 장르 불문하고 교복을 정말 많이 입었다. 입으면서도 ‘이건 아닌데’ 싶은 죄책감이 들더라.(웃음) 은근히 기분 좋기도 하면서도 제 나이를 잘 모르시는 스태프 분들이 ‘너 몇 살이니’하고 어리게 보셔서 곤란할 때가 몇 번 있었다. 그럴 때에는 있는 없는 최대한 연륜을 다 꺼내서 ‘저 나이 되게 많아요’라고 말해야 한다.(웃음) 무엇보다 위기의식이 느껴졌다. 신체와 정신은 나이가 들어가고 있지 않냐. 그게 맞지 않아서 고민이 많았다. 그런데 이번에 딱 제 나이 또래의 캐릭터를 연기했다. 아이를 낳아보지는 않았지만 그 설정 자체가 정말 기분이 좋았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드라마 속 류혜린은 ‘성장 중’이다. 교복을 입은 여고생 역할에서 드디어 자신의 나이와 엇비슷한 30대 역할을 맡았다. 오히려 연기 폭이 넓어질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물으니 류혜린은 “지금부터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스펙트럼이 넓어지느냐가 결정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금 시기가 중요한 것 같다. 처음 연기를 시작할 당시에는 키가 정말 작아서 ‘너가 연극을 할 수 있겠어?’라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다. 연극을 하면서는 다섯 살, 여섯 살 역할도 했었고 여고생 역할에는 자연스럽게 저를 떠올려 주신다. 감사한 일이지만 만년 학생 역할을 할 수는 없지 않냐. 슬슬 다른 세대로 넘어가야 한다고 느낀다. 했던 것만 생각하지 않고 나 자신을 ‘환기’시키면서 변화를 줘야할 것 같다. 그리고 대중들은 사실 저를 잘 모르시고, 비치는 모습만 보실 수밖에 없다. 타 감독님들도 그렇고, ‘저 사람은 저런 역할이 잘 어울리는데 굳이 왜 다른 역할에 써야 하냐’고 느끼실 수 있다. 다른 모습을 보이는 건 오로지 저의 몫이다. 어떤 ‘찰나’를 보여드려야 제게 믿고 맡기실 수 있지 않겠냐.”
그 대답은 코믹한 역할로 연이어 캐스팅되는 상황에 대한 답이 되기도 했다. 그만큼 코믹한 역할을 ‘물 흐르듯’ 잘 연기해내는 류혜린에 코믹한 연기를 하는 비법에 대해 물으니 “사실 에너지가 쉽게 나오지는 않는다”고 고백했다. ‘SNL코리아’에서 귀 밑까지 콧물 분장으로 하고 바보 연기를 펼치던 류혜린의 모습과 사뭇 다른 대답이다.
사진=옥영화 기자
“사실 제가 어릴 적 굉장히 내성적이었다. 신기하게 연기를 하게 됐다. 17살 때부터 연극을 했는데 아직까지도 넘지 못하는 성격이 있다. 망가지는 게 싫다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나를 웃기게 볼까? 사람들이 쟤 뭐지 하고 바라보면 어떡할까’하는 두려움과 자의식들을 깨는 연습을 하고 거의 십여 년 동안 하고 있는 거다. 그런 면에서 (유)세윤 오빠가 하는 걸 보면서 경이롭다고 느낀 적이 있다. 성격이 정말 배려심 많은데 어떻게 카메라 앞에서는 그렇게 연기를 할까 싶다.”
류혜린은 고등학교 때부터 연극을 했다는 말을 하며 ‘무대에 계속 서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류혜린은 “꿈이 ‘노’(老)배우”라고 말하며 “서이숙 선배님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는데, ‘배우는 40살 넘어야지 무대에 발이 좀 붙는다’는 표현을 하셨다. 그 말이 참 위안이 됐다. 전 아직 40은 안 왔으니까”라고 웃음을 터뜨렸다.
“서이숙 선배님께서 말씀하신 ‘발이 붙는다’는 표현은 ‘뭘 하지 않아도 되는 경지’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노력해야 하는 것이 많다. 몰입을 하고, 이런 저런 방법으로 연구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 분들은 그냥 서 있기만 해도 존재감이 발산되는 상태가 된다. 무대나 카메라 앞에서나 좀 있어야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노배우’가 되고 싶냐고? 80대 정도 되는 배우 분께서 연극을 하는 걸 보고 3분 만에 울었다. 제가 관객으로 경험하고 보니 ‘일생에 한 번만 저 순간을 가졌으면’ 하는 욕심이 생겼다. 항상 생각하는 게 배우는 ‘한 순간’, ‘한 찰나’를 위해 사는 것 같다. TV나 영화, 연극 모두 마찬가지다. 어떤 분의 말씀 중에 ‘모든 시공간이 사라지고 카메라와 나만 남는 순간이 있다’는 게 있었다. 그 말을 경험해 보고 싶더라. 끝까지 해봐야 한다. 끝날 때 까지 끝난 게 아니라고 하지 않냐.(웃음)”
아직 자신의 연기에 대해서는 ‘어머 쟤 어떻게 하니’ 싶을 뿐이라고 말하는 류혜린이 본인의 연기를 ‘눈 뜨고’ 볼 수 있는 순간은 언제가 될까. 그는 “언젠가 오지 않겠냐”고 수줍게 웃었다. 그런 류혜린이 되고 싶은 배우는 어떤 모습일까.
“저는 좋은 작업자였으면 좋겠다. 좋은 동료, 같이 작업하면 즐거운 사람. 같이 연기할 때도 함께 할 수 있는 연기를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제가 그런 연기를 보면 감동을 받는다. 시청자에게나 동료배우들에게도 편안해보였으면 좋겠다. 그렇게 하려면 주변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불편한 연기는 ‘상대방에 집중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게 참 어렵다. 카메라 앞에 서면 저절로 내 안의 나에 집중하게 된다. 그게 나 자신을 믿을 수 있어야 상대방을 볼 수 있는 것 같다. 나를 믿고, 연기는 함께 하는 것이라는 걸 잊지 않는, 누가 봐도 편안한 연기를 하는 ‘좋은 작업자’가 되고 싶다.”
유지혜 기자 yjh0304@mkculture.com/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
디자인=이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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