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엄마’ 배세영 작가 “라미란 죽음, 작품 초기부터 염두에 뒀다” [M+인터뷰]
기사입력 2023-06-23 08:30:00
기사 | 나도 한마디 |



최근 안방극장을 감동과 눈물을 자아낸 드라마가 탄생했다. 바로 ‘나쁜 엄마’다. 사진=드라마하우스스튜디오∙SLL∙필름몬스터
JTBC ‘나쁜엄마’는 자식을 위해 악착같이 나쁜 엄마가 될 수밖에 없었던 ‘영순’과 아이가 되어버린 아들 ‘강호’가 잃어버린 행복을 찾아가는 감동의 힐링 코미디다. 배우 라미란과 이도현이 모자지간으로 호흡을 맞췄고, 이외에도 안은진, 강말금, 최무성, 정웅인, 유인수 등이 출연해 열연을 펼치며 하나의 작품을 완성했다.
이에 ‘나쁜엄마’는 자식을 위해 나쁜 엄마가 될 수밖에 없던 영순과 뜻밖의 사고로 아이가 된 강호, 그리고 훈훈한 조우리 패밀리의 사람 냄새 물씬 나는 이야기로 단숨에 시청자들을 매료시켰다.
이후 호평 속에 막을 내렸고, ‘나쁜엄마’를 집필한 배세영 작가는 시청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나쁜엄마’라는 작품을 집필하게 된 계기와 함께 12부작이나 16부작이 아닌 14부작으로 결정한 이유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14부로 결정한 가장 큰 이유는 기획안을 구성하면서 각각의 스토리라인과 에피소드를 분배해봤을 때, 우리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가장 효율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길이로 14부가 가장 적당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돼지’라는 소재가 인상깊었는데, 많은 동물들 중 돼지여야 했던 이유가 무엇인지, 돼지에게 ‘사자’ 같은 이름을 붙인 비하인드와, 또 조진웅 배우가 특별출연 겸 1화에서 강렬한 활약을 펼쳐 주셨는데 조진웅 배우의 캐스팅 과정도 이야기 해 달라.
처음 ‘나쁜엄마’는 영화 시나리오로 기획됐다. 당시 제가 건강검진에서 암 의심소견을 받고 3개월 후 있을 재진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남겨질 아이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으로 가득했다. 마침 남편이 동물약품 회사에 재직하고 있었을 때라 돼지농장을 함께 여러차례 방문했던 적이 있었는데 ‘어미돼지는 28일동안만 새끼돼지와 함께 할 수 있어서 그 기간동안 돼지의 모든 습성을 가르치고 떠나야 한다’는 말을 듣고 마치 어미돼지의 삶이 그 당시에 제가 처한 상황 같다고 느꼈다.
28일 동안만 새끼와 있을 수 있는 어미 돼지의 상황과 주인공 영순이 너무도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나아가 닮았지만 다른 시한부 상황을 은유적으로 작품과 연결하려고 하였고, ‘하늘을 볼 수 없는 돼지가 하늘을 보기 위해서는 넘어져야 한다는 시련이 있지만 그것을 견디고 이겨내어 기적을 만든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 또 엄마를 상징하는 동물이 있다면 항상 새끼들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돼지의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오르기도 했다.
강호가 돼지에게 사자의 이름을 붙인 건, 강아지를 호랑이라고 부르는 걸 보고 재밌어 하는 미주에 대한 관심 때문이다. 또한 지금은 강호가 힘없는 아기돼지처럼 연약해 보호받아야 할 상황이지만, 언제 가는 사자처럼 용맹하게 오태수와 맞붙어야 한다는 의지도 담겨있다.
조진웅 배우의 출연은 극 중 해식은 1화에만 등장하고 죽지만 작품 전체를 관통하며 정서를 지배하고, 사건의 시작이자 끝인 인물이기 때문에 단번에 강렬한 임펙트를 줄 수 있는 인물이 필요했다. 이에 조배우님이 꼭 필요하다고 말씀드렸다. 워낙 연기력이 뛰어난 분이고 기획 초기부터 ‘나쁜엄마’에 대한 애정을 가졌던 분이라 별 다른 부연설명이 필요 없었던 것 같다. 또한 송우벽 회장의 부산 사투리와 야구에 관련된 정보도 조배우님께 도움을 받았다.
극 중 강호가 사고 후 7살 아이가 되는데, 그 나이대로 설정한 이유가 궁금하다.
미주가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고 하는 시간을 계산 해 봤을 때, 예진과 서진이가 7살 정도가 됐다. 예진, 서진과 강호가 ‘친구’가 되어 조우리 마을을 뛰어다녔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같은 나이로 설정했다. 제게는 이 부분이 아주 중요한 설정이었다.

최근 안방극장을 감동과 눈물을 자아낸 드라마가 탄생했다. 바로 ‘나쁜 엄마’다. 사진=드라마하우스스튜디오∙SLL∙필름몬스터
‘나쁜 엄마’가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바로 배우들의 연기력이었다. 저는 제가 작품을 쓰면서 머릿속에 그려 본 캐릭터가 원래 어떤 캐릭터였는지를 잊어버릴 정도로 영순, 강호, 미주에게 빠져있었다. 눈빛, 표정, 말투... 무심하게 흘러내린 머리카락 한 올까지도 완벽하게 영순, 강호, 미주였다.
조우리 마을 사람들은 정말 대본에 저런 인물들을 썼었 나 싶을 정도로 세상 둘도 없을 개성 있는 연기들을 보여줬다. 게다가 서진, 예진, 안드리아의 어색한 발음은 그조차 연기가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귀엽고 정감이 갔다. 조우리는 그야말로 총성 없는 전쟁! 연기 배틀의 장이 아니었나 싶다.
악의 축 라인인 송회장과 오태수는 이들을 법정에서 단죄하는 것이 맞나라는 생각과, 조우리 야산 어딘 가에 조용히 묻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고 후회를 할 정도로 완벽하게 미운 연기를 보여줬다. 강호의 복수를 빨리 보여 달라고 원성이 높았던 것도 결국 이 두 빌런의 소름 끼치는 연기력 때문 아닌가 싶다.(미소)
의리를 위해 류승룡 배우가 특별 출연했다. 13년 만에 안방극장을 찾게 한 뒷이야기가 궁금하다.
조진웅 배우, 류승룡 배우는 모두 저와 다수의 작품에서 연을 맺어 왔다. 이를 계기로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나쁜엄마 작품 초기부터 많은 조언과 도움을 아끼지 않으셨고 흔쾌히 출연을 해 주셨다.

최근 안방극장을 감동과 눈물을 자아낸 드라마가 탄생했다. 바로 ‘나쁜 엄마’다. 사진=드라마하우스스튜디오∙SLL∙필름몬스터
영순의 죽음은 작품 초기부터 염두에 두었다. 영순이 강호에게 혹독해야만 하는 타임리미트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엄마에게 시한부 설정을 둔 것은 신파에 기댄 감정적인 이유가 아니라 영화, 드라마의 제한된 상영시간 내에서 엄마가 할 수 있는, 아니 해야만 하는 것들을 빠르고 집약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타임리미트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또 영순에게 시한부 설정을 두지 않는다면 영순이 강호를 위해 이렇게 많은 일들을 할 필요가 없다. 시간이 많으니까요. 영순의 다급함이 사건을 전개시키고, 여러 증거들을 찾아내며 인물 간의 오해를 풀리게 만든다.
결말에 대한 만족도는 매우 좋다. 보통의 시한부 이야기처럼 마지막이 우울하거나 침울하지 않고, 작은 축제처럼 표현한 것은 죽지 않는 게 행복한 게 아니라 의미 있는 죽음,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에 남는 죽음, 행복하게 눈 감을 수 있는 죽음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를 담았다.
강호에게 영순은 정말 ‘나쁜엄마’였을까?
좋은 엄마와 나쁜 엄마를 나눌 수 있는 정형화 된 기준은 없다고 생각한다. 좋은 사랑, 나쁜 사랑이 없듯이 말이죠. 아무리 자식입장에서 좋은 엄마였다고 말해도 엄마는 결국 자신이 나쁜 엄마였다고 말 할 것 같다.
좋은사람 나쁜사람은 보편적으로 나눌 수 있다. 하지만 엄마라는 두 글자가 붙는 순간 좋은? 나쁜? 이라는 개념이 모호 해 지는 것 같다. 그래서 나쁜 엄마의 영어식 제목이 The good bad mother다.
대본보다 배우들이 더 잘 구현해줬던 인상 깊었던 장면이 있다면? 또 작가님이 꼽는 명대사, 명장면도 궁금하다.
“배부르면 잠와. 잠 오면 공부 못해” 영순과 강호의 장면은 보면서도 눈물을 많이 흘렸다. 지긋지긋한 트라우마로 기억됐던 말이기도 하고, 사랑하는 엄마의 말을 주문처럼 가슴에 새기고 있었기에 자연스레 나온 말이기도 하다. 이도현 배우와 라미란 배우의 서글픈 교감이 화면에 너무 잘 그려졌다고 생각한다.
(명대사라고 생각한 대사는) “어서와” “다녀왔습니다”다. 단순하게 기억이 돌아왔다는 사실뿐 아니라, 오해가 쌓였던 모자의 관계가 회복되었다는 생각에 아주 의미 있는 대사라고 생각한다. 명장면이라고 생각한 장면은 8화에 다시 일어나 걷게 된 강호를 향해 손을 벌리던 영순과 걸음마를 하던 아기 강호의 모습이 오버랩 되었던 장면이다.
가슴 따뜻한 힐링 코미디라는 점에 시청자들에 호평을 받으며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는데.
3년이라는 집필기간보다, 7주라는 방영기간이 저에게는 더 길고도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과연 저의 첫 드라마가 어떤 모습으로 시청자들을 만날 수 있을지... 많은 걱정과 긴장 속에 한 주 한 주를 보냈고 매주 쏟아지는 박수와 질타 속에서 많은 위로를 받고 또 많이 성장했다.
저희 ‘나쁜 엄마’에 보내주신 과분한 사랑과 관심, 그리고 수많은 응원과 가르침의 메세지에 감사드립니다.
드라마를 통해 어떤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었는지.
희망을 얘기하고 싶었다. 넘어져야만 하늘을 볼 수 있는 돼지처럼… 부모님이 죽어 남편의 소중함을 알았고, 남편이 죽어서 자식의 소중함을 알았고, 자식이 아파서 자신의 소중함을 알았고, 자신의 죽음으로 이웃의 소중함을 알게 된 영순이처럼, 한가지를 뺏아가면 그 자리에 채워지는 희망이 있다는 것. 시련과 고난 속에서야 찾게 되고 찾아지는 그 희망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최근 안방극장을 감동과 눈물을 자아낸 드라마가 탄생했다. 바로 ‘나쁜 엄마’다. 사진=드라마하우스스튜디오∙SLL∙필름몬스터
시청률 결과가 만족스러워서 모두가 행복한 마음으로 종방연을 즐겼다. 마지막 방송은 드라마 속 잔치처럼 흥겹고도 아련했다. 화면에 한사람 한사람이 등장할 때마다 나올 때 마다 환호하고 박수를 쳤다. 또한 오태수와 송회장이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장난스레 야유를 보내기도 했다. 마지막 영순의 장례식과 편지 부분에서는 모두가 눈물을 흘렸다. 서로 감사하고 격려하면서 헤어진 훈훈한 마무리였다.
세상의 ‘나쁜엄마’들과 강호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저희 ‘나쁜엄마’를 통해 부모와 자식의 서로에 대한 이해와 화해가 생겼으면 좋겠다. 자식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자식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물어보고 응원과 격려를 해주세요. 마지막 영순의 대사를 인용하고 싶다. “인생이 참 신기하죠. 한가지를 뺏어 가면 그 자리에 분명 한 가지를 채워 주어요” 넘어져야 하늘을 보는 돼지처럼 힘든 상황이 되어야만 보이는 희망이 있다. 어떤 상황에서든 좌절하지 말고 함께 희망을 찾아가면 좋을 것 같다.
드라마를 사랑해준 시청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모든 작가들은 집필하는 과정의 고난과 고통을 견뎌내며 작품을 완성한다. 저 또한 그랬다. 그 결과물에서 제가 바라보았던 지향점을 함께 바라봐주고 사랑해 주셨던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앞으로 좀 더 두터워진 진심으로 따뜻하고 희망찬 좋은 작품으로 여러분들을 찾아 뵙겠다.
[안하나 MBN스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