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 사랑’ 진미령, 트로트의 옷을 입기까지
기사입력 2016-06-27 16:4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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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N스타 대중문화부] 여전히 소녀 같은 귀여운 외모와 목소리는 진미령을 대표하는 이미지다. ‘소녀와 가로등’ ‘하얀 민들레’로 기억되는 가수 진미령의 음악과 스타일은 트로트의 감성과는 분명 다른 것이었다.
요즘 트로트씬에서 진미령의 이름은 빼놓을 수 없다. 트로트계의 대표곡으로 자리매김한 ‘미운 사랑’ 덕분이다. 어울리기 어려울 것 같았던 트로트의 옷을 입고 다시 한 번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그가 트로트의 옷을 입기까지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가수 진미령의 살아온 길을 함께 되돌아봤다.

Q. 데뷔가 1975년 가요제로 되어 있더라고요. 40년이 흘렀네요?
A. 정확하게는 1976년에 ‘말해줘요’라는 곡으로 데뷔했는데 정보들이 틀리게 나와 있더라고요. 그리고 1977년에 故장덕이랑 만나서 ‘소녀와 가로등’을 내놓았죠. 대상은 못 받았고, 인기상이었나? 오래된 얘기니까여. ‘하얀 민들레’가 1979년에 발표됐어요. MBC 드라마 주제곡이었는데, 40여 년이 지나가는 요즘에도 봄이 되면 라디오에서 노래가 나오더라고요.
Q. ‘소녀와 가로등’, ‘하얀 민들레’ 이런 곡들을 통해서 70년대 후반에 스타로 자리하셨는데 이후에 공백이 길었어요?
A. 미국에 갔어요. 1980년대에 가족들이랑 미국에 이민을 가서 살다가 1988년에 서울 올림픽이 있어서 잠시 한국에 나왔다가 다시 활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 때 저희 아버님이 대한유도협회 부회장으로 계셨어요. 선수들 통역 자격으로 대회에 참여했죠. 가수가 아니고. 1984년도 LA 올림픽 때도 아버님이 유도선수들 다 데리고 왔을 때 제가 미국에 있었고요. 올림픽과 그런 인연이 있죠.
Q. 올림픽 때 잠시 들어왔을 때 다시 활동하라는 주변의 권유가 있었군요?
A. 다시 만난 지인들이 ‘하얀 민들레’만 내 놓고 가수를 그만두는 게 아깝지 않느냐고 해서 1989년에 저만 한국에 돌아와서 활동을 하게 됩니다. 그 때 발표한 노래가 ‘아하’예요. 지금은 돌아가신 도시의 아이들 김창남씨가 곡을 만들어 줬고 성공을 거뒀죠.
Q. 80년대에 이민을 가신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A. 가족이 가니까 간 거지. ‘하얀 민들레’와 ‘소녀와 가로등’이 대한민국을 강타하다시피 잘 됐어요. 많은 남자들에게 안아주고 싶고 케어해주고 싶은 여자로 자리했고, 가요톱텐에서 1위도 하고 그랬는데, 네 생각에는 ‘이렇게 최상의 위치에 있을 때 여기서 그만둬도 좋겠다’ 이렇게 생각해서 외국에 간 거예요.
Q. 트로트 음악하고는 어떻게 인연을 맺으셨나요?
A. 1991년인가? 나훈아 선생한테 ‘가라지’라는 트로트 곡을 받아서 판을 냈었어요. ‘아하’로 활동한 다음에요. ‘완뽕’이라고 하죠? 완전한 트로트 곡이었는데 잘 알려지지는 않았어요. 트로트와의 인연이 꽤 오래 됐습니다. 그 곡을 받기 위해서 나훈아 선생을 100일 동안 매일 찾아갔어요. 정성을 담아서 곡을 받고 판을 만들었던 노래예요. 그런데, 이 곡을 들고 방송국에 인사를 갔는데 ‘너 얼굴하고 안 맞는다’라면서 PD들이 이 노래를 접으라고 했어요. 이 곡이 정통 트로트였으니까요. 나훈아 선생님이 만들어 준건데, 그 분한테 죄스러운 마음이 있어요. 활동도 거의 못 했거든요. 노래가 좋아요. 후배 가수 우연이가 “언니 난 그 노래가 좋아” 하면서 나이트클럽에서 그 노래를 불러요. 우연이도 당시에 정통 트로트 가수가 아니었는데 노래하러 가면 그 노래를 많이 불렀대요.
Q. 이후에 발표한 곡 중에서 기억에 남는 곡이 있다면요?
A. ‘가라지’를 실패하고 발표했던 노래가 1994년인가 ‘내가 난생 처음 여자가 되던 날’인데, 딸 가진 아빠들 울면서 듣는 노래예요. 꼭 들어 보세요. 이 곡은 김재경이라고 ‘하얀 민들레’를 너무 좋아한 친구가 ‘하얀 민들레 2’를 만들고 싶다고 해서 저한테 가져온 곡이 새롭게 완성된 노래예요. 김재경이 가져온 몇 줄 가사에 제가 가사를 더해서 만들었죠. 이전에도 작사는 했어요. ‘여자나이 서른’이라는 김범룡 작곡 노래에 제가 가사를 붙였죠. 요즘 사랑 받는 ‘미운 사랑’도 송 선생 옆에서 제가 가사를 썼고.
Q. 트로트를 오랫동안 안 해오셨는데, 트로트를 다시 선택한 계기가 있을까요?
A. 나이가 든 거죠. 이제는 내 팬들도 같이 나이가 들어가는데, 내가 언제까지 발라드 스타일의 예쁜 노래들만 부를 수 있겠는가 싶었어요. 그래서 장르를 바꿔 본 거죠. 그래서 이번에 ‘사랑아 반갑다’라는 신곡이 나오는데 ‘가라지’를 너무너무 예쁘게 편곡해서 넣어요. ‘미운 사랑’ 같은 스타일이에요. ‘완뽕’은 아니고.
Q. 5월에 앨범 발매 예정이라고 들었습니다.
진 : ‘사랑아 반갑다’ ‘한잔의 눈물’ ‘가라지’ ‘미운 사랑’도 디스코 버전으로 들어가고, ‘미운 사랑’ 활동했던 것만큼 열심히 뛸 거예요. ‘미운 사랑’은 처음 대한 트로트라서 길을 잘 못 찾았는데. 이번 ‘사랑아 반갑다’는 작사가인 이건우씨하고 열심히 한 번 뛰어보려고요. 조금 더 대중에게 다가갈 기회가 온 것 같아요.
[제휴사:트로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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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트로트씬에서 진미령의 이름은 빼놓을 수 없다. 트로트계의 대표곡으로 자리매김한 ‘미운 사랑’ 덕분이다. 어울리기 어려울 것 같았던 트로트의 옷을 입고 다시 한 번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그가 트로트의 옷을 입기까지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가수 진미령의 살아온 길을 함께 되돌아봤다.

사진=MBN스타 DB
Q. 데뷔가 1975년 가요제로 되어 있더라고요. 40년이 흘렀네요?
A. 정확하게는 1976년에 ‘말해줘요’라는 곡으로 데뷔했는데 정보들이 틀리게 나와 있더라고요. 그리고 1977년에 故장덕이랑 만나서 ‘소녀와 가로등’을 내놓았죠. 대상은 못 받았고, 인기상이었나? 오래된 얘기니까여. ‘하얀 민들레’가 1979년에 발표됐어요. MBC 드라마 주제곡이었는데, 40여 년이 지나가는 요즘에도 봄이 되면 라디오에서 노래가 나오더라고요.
Q. ‘소녀와 가로등’, ‘하얀 민들레’ 이런 곡들을 통해서 70년대 후반에 스타로 자리하셨는데 이후에 공백이 길었어요?
A. 미국에 갔어요. 1980년대에 가족들이랑 미국에 이민을 가서 살다가 1988년에 서울 올림픽이 있어서 잠시 한국에 나왔다가 다시 활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 때 저희 아버님이 대한유도협회 부회장으로 계셨어요. 선수들 통역 자격으로 대회에 참여했죠. 가수가 아니고. 1984년도 LA 올림픽 때도 아버님이 유도선수들 다 데리고 왔을 때 제가 미국에 있었고요. 올림픽과 그런 인연이 있죠.
Q. 올림픽 때 잠시 들어왔을 때 다시 활동하라는 주변의 권유가 있었군요?
A. 다시 만난 지인들이 ‘하얀 민들레’만 내 놓고 가수를 그만두는 게 아깝지 않느냐고 해서 1989년에 저만 한국에 돌아와서 활동을 하게 됩니다. 그 때 발표한 노래가 ‘아하’예요. 지금은 돌아가신 도시의 아이들 김창남씨가 곡을 만들어 줬고 성공을 거뒀죠.
Q. 80년대에 이민을 가신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A. 가족이 가니까 간 거지. ‘하얀 민들레’와 ‘소녀와 가로등’이 대한민국을 강타하다시피 잘 됐어요. 많은 남자들에게 안아주고 싶고 케어해주고 싶은 여자로 자리했고, 가요톱텐에서 1위도 하고 그랬는데, 네 생각에는 ‘이렇게 최상의 위치에 있을 때 여기서 그만둬도 좋겠다’ 이렇게 생각해서 외국에 간 거예요.
Q. 트로트 음악하고는 어떻게 인연을 맺으셨나요?
A. 1991년인가? 나훈아 선생한테 ‘가라지’라는 트로트 곡을 받아서 판을 냈었어요. ‘아하’로 활동한 다음에요. ‘완뽕’이라고 하죠? 완전한 트로트 곡이었는데 잘 알려지지는 않았어요. 트로트와의 인연이 꽤 오래 됐습니다. 그 곡을 받기 위해서 나훈아 선생을 100일 동안 매일 찾아갔어요. 정성을 담아서 곡을 받고 판을 만들었던 노래예요. 그런데, 이 곡을 들고 방송국에 인사를 갔는데 ‘너 얼굴하고 안 맞는다’라면서 PD들이 이 노래를 접으라고 했어요. 이 곡이 정통 트로트였으니까요. 나훈아 선생님이 만들어 준건데, 그 분한테 죄스러운 마음이 있어요. 활동도 거의 못 했거든요. 노래가 좋아요. 후배 가수 우연이가 “언니 난 그 노래가 좋아” 하면서 나이트클럽에서 그 노래를 불러요. 우연이도 당시에 정통 트로트 가수가 아니었는데 노래하러 가면 그 노래를 많이 불렀대요.
Q. 이후에 발표한 곡 중에서 기억에 남는 곡이 있다면요?
A. ‘가라지’를 실패하고 발표했던 노래가 1994년인가 ‘내가 난생 처음 여자가 되던 날’인데, 딸 가진 아빠들 울면서 듣는 노래예요. 꼭 들어 보세요. 이 곡은 김재경이라고 ‘하얀 민들레’를 너무 좋아한 친구가 ‘하얀 민들레 2’를 만들고 싶다고 해서 저한테 가져온 곡이 새롭게 완성된 노래예요. 김재경이 가져온 몇 줄 가사에 제가 가사를 더해서 만들었죠. 이전에도 작사는 했어요. ‘여자나이 서른’이라는 김범룡 작곡 노래에 제가 가사를 붙였죠. 요즘 사랑 받는 ‘미운 사랑’도 송 선생 옆에서 제가 가사를 썼고.
Q. 트로트를 오랫동안 안 해오셨는데, 트로트를 다시 선택한 계기가 있을까요?
A. 나이가 든 거죠. 이제는 내 팬들도 같이 나이가 들어가는데, 내가 언제까지 발라드 스타일의 예쁜 노래들만 부를 수 있겠는가 싶었어요. 그래서 장르를 바꿔 본 거죠. 그래서 이번에 ‘사랑아 반갑다’라는 신곡이 나오는데 ‘가라지’를 너무너무 예쁘게 편곡해서 넣어요. ‘미운 사랑’ 같은 스타일이에요. ‘완뽕’은 아니고.
Q. 5월에 앨범 발매 예정이라고 들었습니다.
진 : ‘사랑아 반갑다’ ‘한잔의 눈물’ ‘가라지’ ‘미운 사랑’도 디스코 버전으로 들어가고, ‘미운 사랑’ 활동했던 것만큼 열심히 뛸 거예요. ‘미운 사랑’은 처음 대한 트로트라서 길을 잘 못 찾았는데. 이번 ‘사랑아 반갑다’는 작사가인 이건우씨하고 열심히 한 번 뛰어보려고요. 조금 더 대중에게 다가갈 기회가 온 것 같아요.
[제휴사:트로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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